개똥철학 57

봉정사 미니 소원 등

단풍이 화려한 요즘이다.독서의 계절이지만, 책만 읽고 있기엔 날씨가 보통이 아니다.새벽 6시에 영주를 목표로 집을 나섰다.슬슬 부석사에 도착한 시간이 10시.많은 사람들이 벌써 도착해 있거나 내려가는 중.쌀쌀해진 가을 이라기보다는, 겨울이다.108개의 계단을 그렇다 치고 어찌나 가파른 산 꼭대기에 부석사가 있는지.실내용 인간인 나는 참 힘이 든다.지나가는 아저씨가 비웃듯 '운동 부족인 사람들은 헥헥 거리며 올라가네, 운동 좀 하지'라고 해서 짜증이 났다.운동 부족인 사람도 나름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런 마음속의 소리를 다른 사람이 들리도록 크게 말하는 꼰대.수술하고 여행 온 사람도 있고, 장애인도 , 노약자도 있는데.계단을 잘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다 운동 부족인가? 단정한 부석사는 단풍 속에서 불심을..

개똥철학 2024.11.24

투명인간 (성석제 장편소설)

놀라운 책이다.소설보다는 역사,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작가는 아무리 그 시대를 살았다 하더라도.너무나 한 줄도 다르지 않은 그때를 이야기한다.잊고 있었던, 가난하고 아프고 모자란 거 투성인 그 시간을.생생하게 기억나게 해 주는 아픈 소설이다.아니다, 소설은 아니다.읽으면서 가슴이 쓰리고 눈물이 나는 책이 있었나 싶게 몰입이 된다.내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다. 특히 "나"라는 주인공이 계속 바뀌는 책은 처음이다.이런? 나는 누구인가?계속 집중하게 만든다.결국 등장인물 모두가 제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이다. 만수는, 투명인간이 분명하다.뭐든 다 볼수있는 투명인간이다.얼마나 슬픈 존재인지도 모르는, 죽을 수도 없는, 포기할 줄 모르는 투명인간이다.만수 같은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낸다.결국 그 박수는 가장 가까운 ..

개똥철학 2024.06.29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장편소설)

하루종일 '카야'의 외로운 일생을 읽었다.너무나 외롭고 무서운 인생이지만, 습지가 카야를 키우고 보호해 준 듯하다.눈물이 나는 이야기이다.어디에선가 아버지라는 괴물에 고통당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슬픈 일이다. 카야가 한 모든 행동은 다 찬성이다.잘했다.이 책은 놓지 못하게 하는 자력이 있다.쉽게 시작하지 말고.영화까지 봐야겠다.두서없이 감동을 정리하지 못하겠다.끝까지 한 번에 읽기를. 추천.

개똥철학 2024.06.21

랄라라 하우스 ( 김영하 생각의 집 )

신문에 연재한 짧은 글을 모아둔 '생각의 집'이다.조금 엉뚱하고, 색다르고 아이디어가 재미있는 산문이다.작가의 특별한 눈과 경계 없는 생각의 넓이가 부럽다.소설만 잘 쓰는 작가가 아니다.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아껴서 메모하며 보는 편이 더 좋다.동물이나 귀여운 캐릭터는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의 작가인데.고양이에 대한 글은 참 랄라라하우스답게 명랑하게 읽었다.작가의 사적인 공간을 살며시 보는 경험을 한 것 같다. 글을 단순하게 직선적으로 바로 쓰는, 참 멋진 글투가 좋다. 강추.

개똥철학 2024.06.18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단편소설이라 가볍게 시작했지만.특이하고 재미있고 여운이 남는다.특히 하루키 작가의 단편은 이게 뭘까하고 읽다 보면 끝이 난 소설인데도 뒷일이 너무 궁금해진다.'여자'를 잃었거나, 애초에 없었거나.모든 이야기에 '여자'는 없다.참으로 '상실'에 대해 조예가 깊은 작가이다.이미 읽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없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살다 보면 '여자'에 준하는 귀한 무엇이 자꾸 없어지기 마련이다.건강, 재산, 믿음, 우정 따위가...그래도 계속 의심 없이 살아야 한다.그게 주제가 아니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진짜 모든 이야기들이 다 신선하고 재미있다. 강추.

개똥철학 2024.06.13

강원도 여행

강원도는 부산에서 멀고 먼 곳이다.2박 3일, 여름이 되기 전에 우리는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다.목요일에 아침 일찍 출발했다.현충일이라 조금 진중한 분위기지만, 오랜만의 먼 길 여행이라 신나고즐거웠다.동해바다들을 끼고 국도로 갔다.저장해둔 노래들을 들으며 차창 밖을 즐기며.좀 낡은 호텔이지만 넓고 조용하고 뜨거운 물 잘 나오고.더 바랄게 없는 숙소. 속초에 숙소를 정했다.이틀을 편하게 잘 쉬고 잘 자고.중요한 게 먹는 건데...부대찌개만 연속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이번에는 속초스러운 것을 먹자.지나가던 길에 속초중앙시장이 딱 보였다.그래, 시장에 가면 맛있는 게 많지.우연한 길에 들어간 시장은 마침 축제기간이라 사람이 많았다.줄 서서 감자전, 오징어순대, 홍게라면을 먹었다.오, 맛있네가 아니고.이 사람 ..

개똥철학 2024.06.09

최고의 점심. 도랑추어탕

지나가다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언제 한번 가보자 하고.일요일 점심시간이 좀 지난 2시에 '도랑추어탕'을 찾았다.열 팀 정도가 기다리는 중.깨끗한 식당에 추어탕을 주문하고.숭늉을 주는데 보통의 맛이 아니다.뭔 숭융이 고소한 맛을 낸다.기본 반찬이 야무지게 나오고, 김치 깍두기는 참 맛있네.상추나 배추를 쌈 싸 먹으라는데, 양념장이 참 맛있다.추어탕이 나오고, 빈자리에 불고기가 나온다.헉! 방금 구운 고기는 파랑 먹으면 환상이다.사진은 먹느라 미처 못 찍었다..... 손석구 닮은 사장님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산하랴 서빙하랴.말하기도 전에 김치 리필을 해 주신다.엄지 척!사장님의 친절한 매너가 마음에 들어온다.어르신들이 많은 식당인데 모든 손님들이 편안한 모습이다. 동네에 이런 맛집이 있다..

개똥철학 2024.05.26

비빔국수가 해장국으로 변하는 방법

요리랄 것도 없는 비빔국수, 가 먹고 싶다.싱싱한 야채를 탱글거리는 국수와 새콤달콤 소스와.예상과는 달리 비빔국수는 지옥의 맛이다.니글거리는 게 간장 맛.으윽.짜증나는 맛이다.기대하고 있던 남편이 젓가락을 놓는다.사람이 먹을 게 아니야! 화명동 ' 맛나 감자탕'은 가깝다.일인 만원이면 최고의 밥을 먹을 수 있다.오, 나의 손은 어떻게 태어났을까?문디 손을 가졌으면 입이라도 무던하던지... '맛나 감자탕'의 해장국은 해장을 넘어섰다.

개똥철학 2024.05.05

짖지 않는다고 물지 않는 건 아니다.

공유 나는 잘 짖지 않는 개에 속한다. 굳이 개에 비교한다면. 그렇다고 비겁한 건 아니고, 일단 지켜보는 것이다. 섣불리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것. 그걸 오해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너는 조용한, 화내지 않는 호구구나. 착각하지 마시라는 신호를 보내도 호구라고 결론을 내 버린다. 잠시 호구인척 잘해주다가 (참고 참아보는 거). 잠깐. 나도 그 시점이 궁금하다. 왜 참아주고 호구인척 하는지. 그건 내가 정해 놓은 예의라는 선일 거라고 생각한다. 인연에 대한 예의. 그러나 이제 참아 낼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나는 지체 없이 끝을 낸다. 나는 네가 불편하다고 말을 하든지, 아니면 연락을 무시하고 잠수를 하든지. 미안한 마음은 하나도 없다. 네가 어떤 인간인지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하든지. ..

개똥철학 202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