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글쓰기

퍼루크 2025. 12. 31. 02:51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썼던 것 같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자작시와 좋아하던 시인의 시를 베껴 적어 작은 시집을 만들었다.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을 텐데,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 읽기가 밥 먹는 것보다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가 꾸며 놓은 작은 책방에서 전집이며 시리즈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웬만한 책은 다 읽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시를 외웠다.
글쓰기 대회를 목표로 하진 않았지만 글짓기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보다 도서관이 더 중요했다.
책 대출 카드에 내 이름을 많이 남기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쓸모 있어 보이지 않는 책도, 이상한 책도 많이 읽었다.
고2 때 담임 선생님이 따로 불러
“이제는 학력고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씀하시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요즘 말로 하면, 알쓸신잡 같은 학생이었다.

대학에 가서는 또 한 번 놀랐다.
똑똑하고,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니.
밤을 새워 이문세 노래를 들으면 시가 술술 써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깊고 새로운 독서는 부러웠고,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나를 자주 부끄럽게 만들었다.

20대는 돈을 버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책은 주로 책대여점에서 빌려 대충 읽었다.
언젠가는 내 돈으로 책을 사고,
아무 걱정 없이 천천히 읽는 날이 오길 바랐다.
하지만 돈을 벌어도 늘 빠져나가기만 하는 현실 속에서
그 시절의 글은 아픈 이야기뿐이다.
지금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30대와 40대는 정신없이 흘렀다.
결혼하고, 사고를 겪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정말 미친 것처럼 살았다.
그때는 여행기를 읽었다.
언젠가 나도 집을 떠나고, 일을 떠나고, 일상을 떠나
나만의 시간을 살 수 있기를 꿈꾸면서.
그 시절 여행기는 내게 비타민이자 보약이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많이 자유로워진 50대가 되었다.
밤을 새워 읽을 책이 있고,
내 돈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거의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써 왔지만
나는 시인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여전히 글을 쓴다.
아직은 누구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러운 글들이지만.

그래서 더 읽고, 또 읽는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고,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한 행복이다.

'개똥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심으로 하는 일  (0) 2026.02.26
양산 천성산 일출 보기  (1) 2026.01.02
법화경 사경  (0) 2025.12.25
나는 생명 연장, 유지, 이런거 안할거다.  (0) 2025.12.03
여름 구내 식당 주방  (4) 2025.08.08